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문단 편집) ===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 [[파일:external/www.uwazamrze.pl/0ce77ab9a0f79a44117b6d6e3211f90a.jpg|width=400]] ▲ 뉘른베르크 재판에 출두한 바흐첼레프스키. ||[youtube(bobdjG3vwjo, width=550, height=400)]|| ||Nuremberg Day 28: Telford Taylor direct examination of Erich von dem Bach-Zelewski[* 재판이 진행 중이던 [[1946년]] 1월 7일 [[미국]] 측 검사인 [[https://en.wikipedia.org/wiki/Telford_Taylor|텔퍼드 테일러]] [[준장]]이 바흐첼레프스키를 심문하는 영상이다.]|| [[제3제국]]이 멸망하고 바흐는 고향에서 은둔하던 중 해외로 망명하려 했으나 1945년 8월 1일 [[미군]]에게 체포되었고 악질적인 파르티잔 탄압 작전의 주모자로서 [[뉘른베르크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하인리히 힘러]]를 비롯한 자신의 상관들에 대하여 불리한 증언을 하였다. 이 때문에 전범 취급은 면하여 피고 신분이 아닌 증인 신분으로 출두하였고, 잔혹한 학살을 당한 당사자인 폴란드나 소련에 인도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반면 같은 증인 자격으로 출두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는 과거 같이 근무했던 [[독일 국방군]] 장교들인 [[빌헬름 카이텔]], [[알프레트 요들]]에 불리한 증언을 하기를 거부하여 [[소련]]에서 1953년까지 억류되어 있어야만 했다. 에리히 폰 뎀 바흐는 이때 학살 같은 전쟁 범죄 혐의를 전적으로 [[독일 국방군|국방군]] 탓으로 돌리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고, [[헤르만 괴링]], [[알프레트 요들]] 등 전직 국방군 장성들이 그의 비열한 태도에 분노해 욕설을 퍼부었다. 다음은 그 상황을 기술한 기록이다. >"[[스컹크]] 같은 놈!" 피고석에 앉아 있던 헤르만 괴링이 소릴 질러 뉘른베르크 법정에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돼지 새끼야!" 이전까지 동료였던 에리히 폰 뎀 바흐가 증인으로 나타나 증언한 것을 듣고 난 후 괴링은 분노가 폭발했다. "저놈은 [[나치당|이 개같은 조직]]에서 가장 잔인한 살인마였다고!" 괴링은 주먹을 내지르며 고함을 질러댔다. 폰 뎀 바흐는 입을 닫고 있었다. "저 역겨운 모가지 안 잘리려고 영혼까지 팔아먹는 놈 같으니." 괴링은 계속해서 비난을 퍼부었고 갈수록 시끄러워졌다. 요들도 열받기는 마찬가지였고 맞장구를 쳤다. "저 '증인' 나리한테 물어봐라, 히틀러가 저 새낄 파르티잔을 때려잡는 모범적인 전사라고 우리한테 추켜세워 주던 걸 알기나 하냐고. 저 더러운 돼지새끼한테 물어보란 말이야!" 폰 뎀 바흐가 증언대에서 내려오자 괴링은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은 붉어지고 호흡은 가빠졌다. "개돼지 같은 새끼야!(Schweinhund!)" 괴링은 고함을 질러댔다. "배신자놈!(Verräter!)" >---- >[[https://books.google.co.kr/books?id=uQouAAAAQBAJ&pg=PA31&dq=erich+von+dem+bach+zelewski&hl=ko&sa=X&ved=0ahUKEwjXm_PbgI7OAhXBto8KHUvXAxQQ6AEIMDAD#v=onepage&q=erich%20von%20dem%20bach%20zelewski&f=false|Warsaw 1944: Hitler, Himmler, and the Warsaw Uprising p.31]] 재판정에서 괴링이 그 난리를 쳐댔는데도 딱히 제지받지 않았던 걸 보면 판검사들에게도 이 작자의 행태가 얼마나 답이 없어 보였는지 알 만하다. 다음은 소련 측 수석검사 유리 포크롭스키(Юрий Владимирович Покровский) 대령이 바흐를 심문한 내용이다. [[http://www.holocaustresearchproject.org/einsatz/bach-zelweski.html|출처]]. 바흐첼레프스키에 대한 [[http://avalon.law.yale.edu/imt/01-07-46.asp|재판 기록 전문]]에서 "7 Jan. 48"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인용된 단락이다. 참고로 위 영상에서 들을 수 있는 테일러 검사와 바흐첼레프스키의 대화 기록도 있는데 이건 ctrl + F를 누르고 "Afternoon Session"을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테일러 검사는 영어로, 바흐첼레프스키는 독일어로 말하고 있는데 기록에는 모두 영어로 번역되었다. >'''포크롭스키''': 준동하는 파르티잔 부대에 대한 보복으로 포로를 감금하거나 마을에 방화를 일으키도록 명령한 것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Do you know of any order prescribing the seizure of hostages and the burning of villages as a reprisal for abetting partisan units?) > >'''바흐첼레프스키''': 모릅니다. 그런 명령을 내리는 문서가 발행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면으로 된 명령서가 없다는 건 제 실수입니다. 예를 들어 그 명령에는 1명, 혹은 10명의 독일군 병사가 죽은 데 대한 앙갚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어야 하는지 확실히 설명되었는데 말입니다. >(No. I do not think that written orders to that effect were ever issued, and it is precisely this lack of orders which I considered a mistake. It should, for instance, have been definitely stated how many people could be executed as a reprisal for the killing of one, or of 10 German soldiers.) > >'''포크롭스키''': 그렇다면 어떤 특정 지휘관이 지역 주민을 응징하는 수단으로서 마을을 불태웠다고 한다면, 그 지휘관들이 행동한 것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것입니까? >(Am I to understand that if certain commanders burned villages as a punitive measure against the local population, they, the commanders, would be acting on their own initiative?) > >'''바흐첼레프스키''': 그렇습니다. 그런 조치는 지휘관 스스로에 의해 결정된 겁니다. 그 지휘관의 상관들도 그런 행동을 거스르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파르티잔 구역 내에서 지역 주민에게 피해가 가는 불법적인 행동이 자행된다면 어떤 징계 조치나 사법적 조치도 취해져서는 안 된다고 최고사령부에서 분명히 지시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즉 상술한 합법적, 온건 수단이 아니라 대량 학살 같은 강경책으로 보복하라는 뜻이다.] >(Yes. These steps would be taken by a commander on his own initiative. Nor could his superior officers do anything against it, since orders emanating from the highest authorities definitely stated that if excesses were committed against the civilian population in partisan areas, no disciplinary or judicial measures were to be taken.) > >'''포크롭스키''': 그렇다면 인질 체포에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됩니까? >(And can we assume that the same applied to the seizure of hostages?) > >'''바흐첼레프스키''': 인질 문제는 파르티잔 진압 과정에서는 제기된 적이 없습니다. 인질에 대한 건 [[서부전선]]에선 자주 논의되었지만, 대게릴라 전투 과정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인질'이란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Well, I think that the question of hostages did not arise at all in the anti-partisan struggle. The hostage system was more common in the West. At any rate the term “hostage” was not used in anti-partisan warfare…) > >'''포크롭스키''': 제가 그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가정하면, 당신은 내 동료인 미국 검사가 질문한 내용에 대해 "게릴라 진압전은 슬라브, 유대인 공동체 파괴의 전조였다"고 응답한 것이 맞습니까? >(If I understood you correctly, you replied to a question of my colleague, the American Prosecutor, by saying that the struggle against the partisan movement was a pretext for destroying the Slav and Jewish population?) > >'''바흐첼레프스키''': 그렇습니다(Yes). > >'''포크롭스키''': 독일군 사령부는 게릴라 진압 과정, 유대인 공동체 파괴에 어떤 수단이 동원되었는지 알고 있었습니까? >(Was the Wehrmacht Command aware of the methods adopted for fighting the partisan movement and for destroying the Jewish population?) > >'''바흐첼레프스키''':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군 수뇌부들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힘러가 짜낸 계획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The methods were known generally and hence the military leaders as well. I do not, of course, know whether they were aware of the plan mentioned by Himmler.) > >'''포크롭스키''': 당신은 독일은 슬라브 공동체를 파멸시켜 인구를 3천만까지 줄여 버리려 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이 내용과 이러한 명령을 어디서 들었습니까? >(You have told us that the Germans intended to destroy the Slav population in order to reduce the number of Slavs to 30 million. Where did you get this figure and this order?) > >'''바흐첼레프스키''': 정정하겠습니다. 3천만까지 줄인다는 게 아니라, 3천만을 죽여 없앤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이 나온 건 힘러가 베벨스부르크[* 원래는 1603년경에 지어진 고성이 존재한 곳이었으나 힘러가 이곳을 [[슈츠슈타펠]]의 사령부로 삼고 훈련을 시행했으며 오컬트적 취미를 실험하고 개발하는 기지로 변질되었다.]에서 연설한 것이었습니다. >(I must correct that: Not to reduce to 30 million, but by 30 million. Himmler mentioned this figure in his speech at the Wewelsburg). > >'''포크롭스키''': 당신은 소련 내 독일 점령 지역에서 독일 지도층과 군 수뇌부가 행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3천만 명의 슬라브, 유대인을 학살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실행되었단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까? >(Do you confirm the fact that actually all the measures carried out by the German commanders and by the Wehrmacht in the occupied Russian territories were directed to the sole purpose of reducing the number of Slavs and Jews by 30 million?) > >'''바흐첼레프스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독일군이 슬라브 인구가 3천만 명 감소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질문을 다시 해 주십시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The meaning of that is not quite clear to me. Did the Wehrmacht know that the Slav population was to be diminished by 30 million? Would you please repeat the question, it wasn’t quite clear?) > >'''포크롭스키''': 다시 묻겠습니다. 독일이 점령한 각 행정 구역에 주둔한 독일군 사령부가, 슬라브, 유대인 3천만 명을 죽여 없애겠다는 목적을 위한 조치를 시행했다는 것을 진정으로 확신하냐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하십니까? >(I asked- Can you actually and truthfully confirm that the measures taken by the Wehrmacht Command in the district administrative areas then occupied by the Germans were directed to the purpose of diminishing the Slavs and Jews by 30 million? Do you now understand the question?) > >'''바흐첼레프스키''': 그 조치가 계속되었더라면 3천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 어떤 새로운 사태가 상황을 뒤바꾸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I believe that these methods would definitely have resulted in the extermination of 30 million if they had been continued, and if the developments of that time had not completely changed the situation.) > >'''포크롭스키''': 이상으로 증인에 대한 심문을 마치겠습니다. >(I have no further questions to put to the witnes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